
1920년대 남부에서 북부로 건너온 흑인들은 할렘에 모여들기 시작 했습니다. 그곳에 몰려든 사람들은 다양한 국적, 그리고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였죠. 그런 이유로 뉴욕의 할렘은 전 세계의 음악과 예술이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문화적 실험실이 되었습니다.모든리듬이 시작된 곳.할렘수많은 재즈 클럽과 댄스홀이 생겨나고 사라졌지만, 그중에서도 스윙 댄스의 역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곳이 있습니다. 단순한 유흥 공간을 넘어 많은 사람들이 슬픔과 기쁨을 함께 공유하고,위로를 주며, 스윙재즈의 심장 박동 자체였던 곳, 바로 전설적인 클럽인 '사보이 볼룸(Savoy Ballroom)'입니다.
1)할렘의 심장부에 세워진 거대한 스윙재즈의 성전
1926년 3월 12일, 맨해튼 북부 할렘의 중심 거리인 레녹스 애비뉴(Lenox Avenue)에 거대한 클럽이 열렸습니다. 사보이 볼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공간은 다른 클럽들과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규모와 시설을 자랑했습니다. 공간의 길이는 무려 60미터가 넘었고, 최고급 스프링 마호가니 나무로 제작된 거대한 플로어가 댄서들을 맞이했습니다. 이 특수 제작된 바닥은 댄서들이 격렬하게 락 스텝과 킥을 밟을 때마다 미세하게 출렁거리며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을 흡수해 주었습니다.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 경험상 춤을 추는 공간에 이러한 플로어가 없으면 반드시 다칩니다. 그래서 현재 전 세계 스윙댄스 클럽의 바닥은 이러한 스프일 플로어가 준비되어있습니다. 댄서들은 그 바닥의 탄력을 이용해 밤새도록 지치지 않고 리듬을 탈 수 있었습니다. 플로어의 양쪽 끝에는 두 개의 거대한 밴드 스탠드가 마주 보고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칙 웹(Chick Webb),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등 당대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던 두 개의 빅 밴드가 서로 경쟁하듯 번갈아 가며 연주를 이어갔기 때문에, 이곳의 댄스 플로어 위에서는 음악이 단 1초도 끊기는 법이 없었습니다.이 공간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은 땀으로 흠뻑 젖은 셔츠를 짜내며 다음 곡의 리듬에 몸을 던졌고, 끊임없이 몰아치는 브라스 섹션의 폭발적인 사운드는 사람들의 아드레날린을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사보이 볼룸은 할렘 전체의 엔진이자, 스윙 댄서들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불태울 수 있는 완벽한 해방구였습니다.
[스윙이란 무엇인가?]https://bluesb.tistory.com/entry/%EC%8A%A4%EC%9C%99%EC%9D%B4%EB%9E%80-%EB%AC%B4%EC%97%87%EC%9D%B8%EA%B0%80-%EC%9E%AC%EC%A6%88%EC%9D%98-%EC%8B%AC%EC%9E%A5-%EB%B0%95%EB%8F%99-%EC%8A%A4%EC%9C%99%EC%9D%8C%EC%95%85%EC%BD%9C%EC%95%A4%EB%A6%AC%EC%8A%A4%ED%8F%B0%EC%8A%A4%EC%82%AC%ED%9A%8C%EC%A0%81%EA%B8%B0%EB%8A%A5
2)인종의 벽을 허물어버린 오직 하나의 규칙, 리듬과 춤
사보이 볼룸이 미국 재즈 및 대중문화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공간으로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샹들리에의 화려함이나 엄청난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그 공간을 지배했던 단 하나의 절대적인 철칙, 누구나가 지켜야 하는 원칙 때문이었습니다. 1920년대와 30년대의 미국은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s)을 비롯한 노골적인 흑백 분리 정책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시기였습니다. 백인과 흑인이 같은 공간에서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을 공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차갑고 야만적인 시대였지만, 사보이 볼룸의 회전문을 통과하는 순간부터는 그 모든 사회적 차별과 억압은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이곳에서 사람의 가치를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은 피부색이 아니라, 밴드의 리듬을 얼마나 완벽하게 타고 파트너와 팽팽한 텐션을 주고받을 수 있느냐 하는 춤의 실력뿐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백인들과 흑인들이 거의 완벽하게 분리가 되어 있는 사회에서 유일하게 차별이 없는 곳. 이것은 지금생각해도 엄청난 일 입니다. 다운타운에서 넘어온 백인 청년들과 할렘의 흑인 댄서들은 하나의 플로어에서 서로의 파트너가 되어 기꺼이 손을 맞잡았습니다. 이들은 스윙 아웃의 짜릿한 원심력을 공유하며 서로의 스텝을 배우고 땀방울을 나누었습니다. 스윙 리듬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는 굳건했던 인종의 벽을 단숨에 허물고 모두를 플로어 위의 동등한 예술가로 만들었습니다. 음악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교감할 수 있었던 이 공간의 위대한 철학은 스윙 댄스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유산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3)캣츠 코너(Cat's Corner), 전설들이 탄생한 뜨거운 결전지
거대한 마호가니 플로어의 북동쪽 구석에는 일반 댄서들이 감히 다가갈 수 없는 팽팽하고 날카로운 긴장감이 흐르는 특별한 구역이 존재했습니다. 댄서들은 이곳을 '캣츠 코너(Cat's Corner)'라고 불렀습니다. 사보이 볼룸에서 가장 뛰어난 기량을 가진 최상위 댄서들, 이른바 '캣츠(Cats)'들만이 암묵적으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댄스 배틀의 숭고한 성지였습니다. 매일 밤 이곳에서는 당대 최고의 빅 밴드가 뿜어내는 살인적인 템포의 음악에 맞춰 목숨을 건 잼 서클(Jam Circle)이 벌어졌습니다. 누군가 플로어 중앙으로 튀어나와 기발한 리듬 쪼개기나 화려한 스핀을 선보이며 구경꾼들의 엄청난 환호를 이끌어내면, 다음 댄서는 자존심을 걸고 그보다 훨씬 더 빠르고 아크로바틱한 스텝으로 응수해야만 했습니다. 이 치열한 자존심 싸움과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조지 스노우든, 프랭키 매닝, 노마 밀러 같은 스윙 댄스의 전설적인 인물들이 자신의 기량을 극한으로 담금질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플로어에서 즐겁게 배우고 땀 흘리며 추는 린디 합의 핵심 동작과 수많은 변형 스텝들 대부분이 바로 이 좁은 캣츠 코너 안에서 벌어진 피 튀기는 경쟁과 영감의 교류를 통해 탄생했습니다. 그들은 그저 음악에 맞춰 춤을 춘 것이 아니라, 리듬 위에서 자신들의 신체적 한계를 넘어서며 새로운 댄스의 역사를 실시간으로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스윙댄스를 즐기는 제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말이 있습니다. '현재의 스윙댄서들은 절대로 1920년대의 캣츠코너의 댄서들을 이길 수 없다'. 그들의 영상을 보고 있으면 이 말이 바로 공감이 됩니다. 그러면 이 공간에서 가장 유명했던 댄서들은 누가 있을까요? 다음편에는 그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